오늘은 화제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대한민국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던 당시 순양그룹이라는 재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 「재벌집 막내아들」은 삼성그룹을 주요 모티브로 하여, 한보그룹,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 등 IMF 구제금융 당시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던 기업들의 이야기를 극 중 소재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극 소재로 등장하는 사건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대한민국 경제사에 남을만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입니다. 그만큼 논쟁도 많았고, 관련 자료도 많습니다. 당장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산업 육성,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 재벌들의 순환출자 구조, 한보그룹의 부도, 기아자동차에 대한 삼성의 적대적 인수 추진 등의 사건은 하나하나가 논몬 한 편,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한 내용들입니다.
하여 오늘 포스팅은 저런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아니라,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이성민 분) 일가가 보여준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혹은 회사의 주인으로 인식하는 태도'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결코 한국의 재벌들의 행태를 비난하려고 쓰는 글은 아닙니다. 변호사로서, 여러 사건을 접하면서 '이 정도만 일고 있었어도 이렇게 억울하게 당하진 않을텐데' 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재벌집 막내아들을 통해 나누고자 쓰는 글입니다.
법인과 개인
통상 우리가 회사라고 일컫는 단체(?)는 대부분 법인에 해당합니다. 법인( 法人) 은 말 그대로 '법적으로는 사람'에 해당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원래 법률행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들 들어 제가 저희 집앞에 사는 고양이와 츄르을 가져다주고 돈을 받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합시다. 그 계약대로 저는 고양이에게 츄르를 가져다주었는데, 고양이는 돈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럼 제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법원에 '고양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누가봐도 말이 되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법률행위는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아니니 그 계약은 법적인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사는?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거래(=법률행위) 뿐 아니라, 여러 개인이 만든 단체와 단체가, 혹은 단체와 개인이 거래할 일이 생겼습니다. 거래가 발생했다는 건 그만큼 분쟁도 발생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렸던대로 '사람'만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고 하면, 단체와의 사이에 체결한 계약(=법률행위)는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법적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단체는 법률행위를 할 수 없고, 그러니 계약의 효력도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생겨난 게 '법인'이라는 개념입니다. 개인이 모여 만든 단체도 '사람'처럼 법률행위를 할 수 있게, 사람과 같은 인격을 부여한 것입니다. "법적으로는 사람으로 보겠다.", " 법적으로 인격을 부여하겠다"해서 '법인'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법률행위는 '개인'(법률용어로는 '자연인') 혹은 '법인'만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2 . 회사의 주인
이제부터 '법인'을 이해하기 쉽게 '회사'라고 하고, 회사의 종류는 역시 이해하기 쉽게 '주식회사'로 한정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회사는 보통 여러 사람들이 돈을 모으고, 각자가 낸 금액에 해당하는 비율만큼 회사를 소유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1천만원을 내고 다른 사람들이 9천만 원을 출자해서, 총 자본금 1억 원짜리의 회사를 세웠으면, 저는 그 회사에 10%만큼의 주주가 되는겁니다. 즉 저는 그 회사의 10%만큼의 주인인겁니다.
회사의 주인은 당연히 그 회사의 자본금을 낸 주주입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회사'와 '회사의 주인'은 별개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개념을 혼동하여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제게 어느 회사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고 합시다. 혹시 일이 잘못되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건가 봤더니, 대표이사가 그 회사 주식 100%를 소유한 1인 주주이고, 돈도 많은 사람이어서 안심하고 그 회사에 투자를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만약 이후에 그 회사가 부도가 나면? 그 '대표이사'로부터는 돈을 돌려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대표이사는 회사의 '주인'이지 '회사' 그 자체는 아니니까요. '회사'에 투자했다면, 그 책임은 돈을 받은 '회사'가 책임을 지는 것이지 '회사의 주인'인 '주주'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개인과 법인, 법인과 주주는 별개의 개념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어딘가에 투자를 하거나 돈을 대여해 줄 때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내가 투자하는 대상이, 돈을 빌려주는 대상이 개인인지, 법인인지 구분해야합니다. 법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고해서 그 법인의 대표이사 '개인'에게, 그 회사의 주주 '개인'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청구할 순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회사'와 '회사의 주인'은 법적으로 전혀 별개의 당사자입니다.
- 순양그룹의 주인은 누구인가
순양그룹의 주인은 당연히 순양그룹의 '주주들'입니다. 현실에선 주주총회에서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마치 회사의 유일한 주인인 것처럼 운영할 수 있겠지요. 드라마에서 '순양물산의 주식을 사들여 승계 작업을 하고 있다'는 대화가 나오는 것은 결국,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하겠다는 뜻입니다.
진양철 회장과 그 일가의 대사들을 들어보면, 마치 자신들을 '순양그룹과 동일시하거나, 혹은 순양그룹의 주인인 것'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재벌들의 이같은 인식은, 법적으로는 물론 성립이 안되는 말이지만, 한국 기업의 역사에서는 일응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의 주요 재벌은 대부분 일제가 남기고 간 회사, 즉 '적산기업'을 모태로 하거나 정부로부터 '적산기업'을 불하받아 규모를 키우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에도 회사와 회사의 주인을 동일시하는 인식이 있는 마당에, 해방 전후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을겁니다. '법인'은 무엇이고, '주주'는 무엇이고 하는 개념들을 따지기에는 시대가 너무 혹독했습니다. 생존 그 자체가 급급했던 시기, 회사의 생존은 곧 그 회사 대표자의 생존이었을겁니다. 그러다가 군부독재-산업화 과정을 거처 재벌이라 불릴 정도의 기업집단을 이룰 정도로 성장했다면, 그 성장 역시 회사를 소유한 사람들 자신의 성장으로 인식했을겁니다.
1인 주주라도 회사돈을 함부로 쓰면 횡령이 됩니다. 한국 재벌들이 주로 횡령·배임으로 법정에 서왔던 것은, 급격한 성장을 겪으면서 관행적으로 해왔던 행위를, 생존 때문에 미처 챙기지 못했던 법으로 재단하다보니 나타나는 장면일 것입니다.
- 결론
「재벌집 막내아들」은, 회사의 주주가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밖에 없었던 한국 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인식이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오히려 기업성장의 동력이 된 것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오늘날 누리는 편의들의 대부분은 우리 기업들이 성장에 목매어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들을 희생하고 얻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재벌집 막내아들」을 통해 뼈아픈 과거를 뒤돌아보고, 어디서라도 내세울만한 기업문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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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변호사 신원진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
